■ Viaggio/2021 제주

20210513

복식웃음 2021. 5. 16. 23:05


어느덧 목요일.
월요일에는 일주일이 언제가나 싶었는데
벌써 한 주의 절반이 지났다.

시간은 언제나 빨리 흐른다.
다만 ‘그 때’, ‘지금’의 속도를 인지 못할 뿐.


회사에선 목요일이 되면,
내일은 드뎌 금욜!!! 이러면서 버티곤 했는데
지금은 흘러가는 시간이 왜 그리 아까운지,,,

오늘도 참여한 ‘차 명상’.
매일 오전 7시가 되면
여유로운 마음으로 명상하면서
하루를 시작 한게 나흘째.

평소보다 더 일찍 일어나기 때문에
엄청 피곤할 것 같았지만
시작 할 때나 하품이 나지, 정작 끝나고 나면 개운했다.
게다가 명상실에서 올라와 1층에서 이 밭(?)을 내려다 보는게 참 좋다.

이 숙소(#취다선리조트)에서 보내는 시간이 쌓일수록
더 매력이 있었다.


조식은 세가지 메뉴 중에서 택1 할 수 있는데
오늘은 조식을 세번째 먹는 날이고,
안먹어봤던 전복죽을 주문했다.
맛은 쏘쏘.


전날 저녁, 맑게 개는 하늘을 보며
다음날 아침에도 맑으면 오름 한 곳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바람은 조금 불었지만 화창한 하늘을 보고
얼른 방에서 등산화를 챙겨신고 카카오택시를 불렀다.

아부오름까지 순식간에 이동.

시내에서 아부오름까지는 택시를 잘 타고 왔는데
혹시 시내로 나가는 택시는 많이 없을 것 같아
기사님께 여쭤보니 이 전화번호를 찍어가라 하셨다.
(콜택시이니) 천원만 더 주면 올거라고.

번호를 알아두니 안심이 되었다.

바로 오름 입구로 갔다.

입구에서 오름 위까지 350m
오름 한 바퀴는 1.5km
대략 확인하고

입구에 표석이 멋있게 서있으니 박제.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바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바람은 선선하고, 습하지도 않았다.
오전 10시반 쯤이라 땡볕도 아니어서 걷기에 최적이었다.

천천히 한걸음씩 올라가니
점점 한 눈에 들어오는 제주의 풍경들.

올라오는 길이 쉽고 경사도 급하지 않아
금방 탐방로까지 올라올 수 있었다.

하늘의 구름은 예술.

능선을 따라 한바퀴 도는데
위치에 따라 오름의 모습이 시시각각 바뀌었다.

이제서야 제주의 매력은 오름에 있음을 깨달았다.
오름은 많이 다녀보지 않았고,
예전에 가봤던 물영아리 오름에 이어
여기가 두번째.

제주에서만 보이는듯한 삼나무 군락과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경만큼은
정말 이 곳(오름)이 유일무이했다.

특히나 날씨가 완벽해서 그 감동이 배가 되었다.

중간중간 쉼터라고 해서 벤치도 있었는데
앉아서 물도 마시고, 멍하게 앉아 있다가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타이머 맞춰놓고 내 사진을 찍기 시작ㅋㅋ

혼자 여행을 하더라도
요즘 사람들(??)은 자기 사진을 잘만 찍는데
난 영 어색해서 그게 잘 안된다.

몇 컷을 실패하다 겨우 건진 두 장ㅋㅋ

짐을 챙겨 또 걷다가

오름의 능선도 찍고

반대편 발밑의 풍경도 찍고

이 예쁜 길을 파노라마로도 찍어본다.

내가 지금 보고있는 모든 풍경을 박제할 기세;;

너무 맑고 깨끗한 하늘 덕분에
저 멀리까지 볼 수 있었다.

날씨가 너무 아까워
근처에 있는 오름을 한 군데 더 가봐야겠다 생각하며
내려왔다.


입구로 다시 돌아와
저기 있는 정자에 앉아 검색을 해봐야겠다 했는데,
어떤 분이 사진을 찍어달라 하셔서
가로로, 세로로, 앉아서 다리 길어보이게 열심히 찍어드렸다.
그랬더니 나도 찍어주시겠다고.

덕분에 이렇게 인증샷을 갖게 되었는데,,,

이내 옆에 계신 아주머니께서 하시는 말씀,,,

혼자 온거냐
언제 온거냐
언제 가냐
어떻게 그렇게 길게 왔냐
자유로워 보여 좋다
등등,,,


솔직히
혼자 다닌지 닷새째가 되니
명상/요가 할 때 ‘나마스떼 🙏🏻’
음식 주문할 때 ‘~~주세요.’
택시에서 내릴 때 ‘감사합니다~~’
말고는 말을 안해서 ㅋㅋㅋㅋㅋㅋ
답답해질 쯤이었는데 말을 거시길래
또 신나게 대답했다 ㅋㅋㅋㅋ

‘어떻게 그렇게 길게 여행하냐’는 질문 같은건
개인적인 질문이지만
20대 때 혼자 여행을 다니면서
이런 레파토리를 수십번 겪어봤기 때문에
불편하지 않았다.


나보고 이제 어디 가냐고
어떻게 갈거냐고,,,,
ㅋㅋㅋㅋ
걸어가려고요,, 그럼 그쪽(상대방, 3명이었다.)은 어디가시냐 했더니
비자림을 가려고 하신단다.
그러면서 나한테 같이 가시겠냐고 ㅋㅋㅋㅋ

비자림은 나도 안가본데라 망설였는데

어느새 비자림에 들어와 있는 나 ㅋㅋㅋㅋ

결국
차를 얻어타고 비자림에 왔다ㅋㅋㅋ

(좌) 우측 분의 여동생인 어머님 / (우) 칠순 어머님

부산에서 당일치기로 오셨다는
칠순 맞이 어머님,
그 어머님의 여동생인 어머님,
여동생인 어머님의 아드님.
이렇게 세 분과 함께 다니게 됐는데
어머님 두 분은 나를 ‘새댁’이라 부르며 딸처럼 챙겨주셨다.

아드님이 사진도 이렇게 찍어주시고ㅜㅜ

비자림을 한 바퀴 돌며
아드님께서 너무 말씀을 잘 하셔서
지루하지 않게 다녔다.


출구로 나오니 점심 때.
당일치기로 오셨으니 지체할 시간 없이 계획을 다 짜오신듯 했다. 식당까지도.

나에게 점심을 어떻게 할건지 물어보시길래
저는 택시타고 시내로 나가서 점심을 먹으려고 한다고 했는데,
나가는 길 태워줄테니까 택시비 아껴서 점심 사먹으라고
ㅋㅋㅋㅋㅋ
이것도 감동이었는데
대화를 하다보니 점심도 같이 먹으러 가자는 분위기?!

불편하실거 같아 괜찮다고 말씀드렸는데

어느새 일행이 되어 돌문어볶음 앞에 앉아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냥 먹을 순 없어 성게미역국을 산다하고
맛있게 나눠 먹었다.

점심까지 같이 먹고
나는 더 이상 같이 다닐 수 없어서
식당 앞에서 인사를 드렸다.

어머님 두 분이 고맙다 하시고
나는 당연히 감사드리고.
악수하며 이것도 인연이라며
서로 여행 잘 하고 돌아가자며 인사.

순간이었지만 재미있었다.

마침 점심을 먹은 식당이 숙소가 있는 동네쪽인듯 해서지도를 켜보니, 해안가를 따라 걷다보면 숙소가 나오는 길이고 (숙소까지 약 4.6km ^^;)
심지어 그 길에 목화휴게소가 있었다.

맥주 한 캔은 놓칠 수 없지.

배도 부르고 날씨는 더할나위 없이 좋으니
맥주를 향해 무조건 걷기 시작했다.

하늘빛이 바다에 투영되어 너무 예뻤다.

어쩜 이렇게 구름한 점 없을까.

해안가의 올레길을 따라 걷다보니
지난 여행에서 만난 인연들이 떠올랐다.


이응 게스트하우스에서 아래층 침대를 쓰던 ㅅㅎ언니.
다음날 이 언니와 함께 사려니숲을 함께 걸었다.

    산티아고 게스트하우스에서 묵었던 날, 바다 앞에서 파도소리를 들으며 술마시고, 그냥 들어가기 아쉬워 근처 ‘다방’까지 걸어가 또 밤새 술마시며 놀았던.
    그 다음날 길에서 정말 우연히 만나 스쿠터 얻어타며 밥도 같이 먹고, 보리빵도 먹으러 가고, 우쿨렐레+젬베+노래부르는 동영상도 찍고 놀았던 오라버니 두 분.
    (심지어 두 분 중 한 오라버니는 그 후에 우연히 이태원에서 만남ㅋㅋㅋㅋㅋㅋㅋ)

      물영아리 오름에서 혼자 온 내게 말을 거셨던, 육지 생활을 접고 제주 생활을 시작하신 교수님 부부.
      버스정류장 앞에 앉아있는 나를 시내까지 친절히 태워다 주셨다.

        이탈리아 피렌체 두오모에서 만나 종탑까지 오르내리고 저녁을 함께 먹으러 갔는데 문 닫은 식당앞에서 허탕쳤을 때, 옆에 있던 한국인 3명과 함께 동행하게 되어 탄생했던,,,
        7명 모두가 한국으로 돌아와 한 자리에 모였을 때 너무 좋은 분위기가 그대로 이어져 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연락하는 팀카카오 언니오빠친구동생.

          일본 가나자와에서 동생과 떨어져 따로 다니다가 너무 외진 곳으로 간 나머지, 역으로 가는 버스가 끊겼을 때. 핸드폰 배터리도 방전되어 불이 켜진 컨테이너 박스에 무작정 문을 열고 들어가 상황을 설명하니 버스가 끊긴 것을 확인하고 따라오라며 본인의 차로 역까지 태워다 주셨던 이름모를 일본인. (성함을 여쭤봤는데 끝까지
          말씀해주시지 않고 내가 내릴 때 “You are lucky.” 라는 말을 남기심ㅋㅋ)

            홍콩 게스트하우스에서 3단 침대+혼성도미토리에서 마주한 부산 친구 두 명. 그날 밤 테라스에서 함께 맥주를 마시며 놀고, 부산에 놀러갔다가 바다 앞에서 회 한 접시 함께 먹었던 기억.

              이외에도 짧게 만나 스쳤던 인연들이 너무 많았다.


              나의 여행을 풍요롭고 풍성하게 만들어주신,
              지금까지 곱씹으며 행복한 순간을 떠올릴 수 있게 만들어주신
              감사한 인연들.


              더군다나 홀로 다니는 제주에서
              렌트카를 타고 다녔으면 만나지 못했을 인연들.

              이래서 내가 뚜벅이 여행을 좋아하는 걸지도 모른다.
              우연한 만남, 동행.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
              이런 것들이 너무 좋다.

              어느덧 오후 3시쯤.
              목화휴게소까지 3km쯤 걸었는데 너무 더웠다.
              그래도 좋았다.
              이렇게 맑은 날을 마주할 수 있는 건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목화휴게소
              드디어 도착!!
              날씨가 좋아서 혹시나 기다려야되면 어쩌지 조바심이 났는데, 혼자이기도 하고 빈 자리가 꽤 있었다.
              역시나 일어나지 않은 일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심리상담을 받으며 그렇게 얘기했던 말들인데.

              양지바른 곳에 자리를 잡고 준치 한 마리를 주문했다.

              자리를 잡았냐고 물어보시는 주인 아주머니.
              밖에 잡았다고 말씀드리니
              “거 잘됐네요~”
              별 말 아닌데 왠지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스르르.

              준치 한 마리와
              냉장고에서 꺼내온 시원~~한 캔맥주.

              캔맥주 따는 그 소리를 담고 싶어 시도한 동영상ㅋㅋ
              괜히 꼭지가 손에 안잡히고ㅋㅋㅋㅋ
              마음은 빨리 따고 싶어 부산한 손가락ㅋㅋ

              캔맥주 첫 모금을 들이키는데 어찌나 시원한지,,,

              제주의 바다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지나가는 사람들
              옆 테이블의 대화소리
              이 모든게 안주가 되어 정말 맛있게 먹었다.
              고추장은 어찌나 달큰한지 ㅋㅋ

              간판도 괜히 정겹고
              해풍에 벗겨진 페인트들도 분위기 있고
              다 제각각인 테이블과 의자도 재미있고


              맥주를 다 마시니 열이 슬슬 오르는거 같아
              폴라포도 하나 사먹었다.
              뒷머리 밑의 땀들이 식으며 시원해졌다.

              혼자거나 말거나~
              옆의 20대 친구들이 다른 테이블 사람들이랑 재잘재잘 얘기하거나 말거나~
              파-란색들을 보며 아무 생각없이 준치를 뜯는 순간이
              너무 좋았다.

              서울에서의 걱정과 힘듦도
              사-악 녹는 느낌.

              햇빛을 쐬고 해풍을 맞으며 쫄깃쫄깃해지는 준치들.

              앞바다에서 잡은건가? 싶었는데
              테이블에 앉아서 먹는 중에 트럭으로 냉동된 준치가 배달되었다ㅋㅋ

              약간 오르기도 하고~~
              바람도 햇빛도 좋고~~
              기분도 좋고~~
              배도 부르고~~


              다시 숙소까지 걸었다.
              그냥 걷기엔 허전하니 에어팟도 꽂고.
              COLDPLAY 노래가 잘 어울리겠다.

              숙소가 눈에 들어올때쯤
              올레길과 바다 사이에 야트막한 언덕이 있었는데
              올라갈 수 있나? 두리번 거리니 저 쪽에 보이는 사다리.

              성큼성큼 올라갔더니 꽤 괜찮은 잔디밭이 있었다.
              야구장에 가져가는 방석(?)을 이제서야 펴본다.

              바다에 가깝게 앉아 계속해서 음악을 들었다.
              우띠,,,, Fix you 듣다가 갑자기 울컥해따;;;;;

              내 생애 가장 젊은 오늘,
              어두운 터널을 지나 다시, 또 시작을 하려는 지금,
              하루가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음을 보니
              울컥해버렸;;;;;;;;

              혼자 잘논다 징짜;;;;


              핸드폰 배터리가 다 닳아가기도 하고
              숙소가 코 앞에 있으니 슬슬 들어가자.


              배가 불러 저녁을 어떻게할까 고민했는데
              저녁을 제쳐두고 일몰을 보러가고 싶었다.

              여기는 제주의 동쪽인데,,,
              근처 어딜가야 일몰을 잘 볼 수 있을까
              폭풍 검색.

              #신양섭지해수욕장
              이내 찾아 카카오택시를 타고 날아온 이 곳.


              타자마자 기사님께 여기가면 일몰을 잘 볼 수 있냐고 여쭤보니 아주 좋다고 하셨다.

              어쩌다 일몰을 보러 갈 생각을 했냐고 물으시길래
              서울에서 일몰을 볼 시간이 없었다고 했다.
              진심이었다.
              그리고 날씨가 너무 맑아 일몰이 예쁠 것 같다고 말씀드리니 오늘 같은 날이 정말 몇없는 맑은 날이었다고 하셨다.

              정말이지 제주에 있는 열흘 남짓 중
              이 날이 가장 맑았다.

              한라산에 걸친 구름도 장관이었다.

              해수욕장 한 쪽에 정자가 있어 자리를 잡고 찍은 타임랩스.

              오늘의 해는 금방 넘어가버렸다.
              또 이렇게 시간이 흘렀다.

              오름 뒤로 넘어간 해의 여운을 보며
              최고의 거치대였던 바위와
              최고의 일몰 스팟을 만들어 준 정자를 뒤로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배가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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