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Viaggio/2017 일본도쿄

20170502 :: 첫째날 :: 22,463보

복식웃음 2017. 5. 12. 00:14

 

 

 

처음으로 오빠랑 단둘이 해외여행을 간건데

아빠는 'ㄴ대리랑 가서 앞으로의 계획을 잘 짜보라'며 용돈도 주셨다.

 

그래, 나흘내내 오빠랑 붙어있으니까, 평소에 많이 못했던 얘기들을 할 수 있는 기회겠다.

비록 지금 나는 구직활동을 하는 중이지만, 그래서 당장 3개월 후를 예측할 수 없지만

그래도.... 흐릿하게나마 앞으로 우리가 어떤 스케줄에 따라 움직여야할지

그 정도의 청사진은 그려볼 수 있지 않을까.

 

 

 

올해, 서른.

내 2016년, 작년의 테마는 '아름답고 찬란한 서른을 맞이하기 위해 준비하는 한 해' 였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서른이 되면 그냥 내 삶이 찬란할 줄 알았다.

스물아홉 때의 나는 정말 치열한 하루하루를 살았기 때문에 자신 있었다.

그 하루하루가 내 한계를 뛰어넘는 나날이었고, 그 결실을 맺으며 마무리했기에 의심이 없었다.

 

하지만 2월부터 도쿄에 가는 5월까지, 나는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었다.

하고 싶은 것과 현실과의 괴리를 눈으로 보았고, 미래는 있으나 현재가 없어 매일 등떠밀리곤 했다.

누가 쫓아오지도, 내가 쫓아가는 것도 아닌데 힘이 들었다.

넓은 운동장 가운데에 나홀로 서있는 것 같았다.

 

근 세달은 정말이지 생산적이다 못해 점점 마이너스가 되어가는 느낌.

나는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다.

 

 

5월 황금연휴.

누가 보면 속편하게 캐리어 끌고 공항에 간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캐리어는 내 마음의 짐을 상징하는 듯 했다.

분명, 유럽여행을 갈때와는 그 기분이 달랐다.

 

그래도 불안하지 않은 이유는 오빠와 함께였기 때문이다.

 

--

 

호텔에 짐만 맡겨두고 점심을 먹기위해 길을 나섰다.

맛집 리스트는 전혀 없고, 되도록이면 녹색창에 '신주쿠 맛집' 이런 키워드로 검색하지 않으며

구글 지도의 별점에 의지해 찾아간 우동집.

ㅇ ㅏ............... 근데

여행지 맛집의 법칙.......... 을 어겼더니 이 북새통..........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볕은 뜨겁고 배는 고픈데... 차례를 기다리기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거같고.........

그때부터 영혼없이 카메라 셔터만 눌러대기 시작했다.

메뉴판 정독하며 뭘 먹어야 잘먹었다 소문이 날까....... 고민고민...........

나는 너무 허기가 져서 근처 훼미리마트에서 요거트를 하나 사먹었다........... 달짝지근한게 위액 뿜뿜

함께하니 기다리는 일도 즐겁고

 

꼬박 한시간을 기다려 겨우 식당에 들어온게 기뻐서 또 웃고. 

맛있는 음식이 눈앞에 펼쳐지니 기뻐서 또 웃었다.

 

여행을 가면 오로지 먹고 자는 것에 대한 문제가 우선이 된다.

서른에 대한 고민, 내 앞날에 대한 고민은 허기 앞에서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

그렇게 단순해진다. 생각과 고민이 제법 가벼워진다.

우리 둘은 새우의 꼬리만 남기고 죄다 먹어치웠다......

 

여기에서 먹은 우동은 나의 허기진 배는 물론이고, 헛헛한 마음까지 채웠다.

그야말로 인생우동.

면발이고 덴뿌라고 국물이고 어느하나 흠잡을데 없이 환상적이었다. 도쿄에 또 가면 여기도 또 가야지

 

 

 

 

맛있는 음식 먹고 배가 부르니 이 뜨거운 햇살도 기분이 좋다.

 

 

새벽부터 난리통이었으니 호텔 체크인부터 하고 잠시 쉬기로.

배정받은 방에 딱 들어갔는데 이게 웬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빠가 호텔 예약하면서 결혼 1주년이라고 ;;;;;; 메세지를 남겼는데, 샴페인이 선물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 기준으로는 숙박비가 좀 쎄서 망설였는데 넘나 좋은것ㅋㅋㅋㅋㅋㅋㅋ

 

 

 

두시간 쯤 쉬었을까.

오후 4시쯤.

한국에서 모르는 핸드폰 번호로 전화가 왔다.

이걸 받아 말아?

 

엄청 경계하며 낮은 목소리로 "여보세요-"

그랬더니 그 쪽에서

"아 안녕하세요, 여기 ㅁㄴ * * *  인데요"

 

 

출발 전에 이력서 제출했던 그 회사에서 온 전화다.

 

목소리를 확 바꾸니 그쪽에서 살짝 웃음ㅋㅋㅋㅋ ^^;

 

면접에 와달라는 얘기였다. 당황 놀람 떨림. 내 가슴에 나비 100만마리가 날아들었다.

면접날짜와 시간을 정하고 전화를 끊었다.

 

여행지에서 받은 거주지로부터의 전화는 나를 너무 흥분되게 했다.

 

 

 

기분 좋게 하라주쿠로 향했다.

8년 전 이 거리를 지나갔던 나는 사회생활이 상상도 가지 않았고, 서른이 오는 날은 까마득 했겠지.

 

같은 여행지에 시간차를 두고 다시 가니 과거의 나와 오늘의 내가 오버랩되었다.

 

다시 새로운 환경에 뛰어들려고 하는 나.

그래, 할 수 있어.

 

군것질거리도 하고

 

 

주변 풍경들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내가 보는 풍경의 8할은 건축물. 다시 건축의 세계로 돌아가 일을 할 수 있을까.

 

 

 

어느덧 저녁 시간.

기대에 못미친 미도리스시에서의 회천초밥.

 

 

 

밤이 되자 시부야의 거리는 더 활기찬 모습이었다.

이렇게 역동적인 도시가 또 있을까. 서울과는 느낌이 다르다.

 

내일부터 이곳은 골든위크여서 그럴까?

밤거리에 온 사람들이 쏟아져나와 북새통을 이뤘다.

 

그 인파에 자연스럽게 흡수되면서도 그때의 표정을 남기기 위해 셔터를 눌러댔다.

 

시부야를 스치고 우리는 롯본기로 향했다.

나흘 중 오늘이 제일 맑다는 날씨예보를 보고, 맑은 하늘아래 도쿄의 야경을 보기 위해.

예전 오사카 우메다빌딩에서 야경을 내려다봤을 때가 떠올랐다.

1년에 한번인 휴가를 받아 다녀온 오사카였는데, 그 높은 빌딩에 올라서니 그동안 몰랐던게 보였었다.

 

내 발밑 저 도시에, 저 조그마한 건물 안에, 그 중 한 층에, 저 구석에 조그마한 책상에 자리잡은

한 사람을 떠올리며

그 사람에 나를 대입하니

난 이 넓고 넓은 세상에 먼지보다도 작은 크기였다.

 

내가 보는 주변이 전부가 아니었고, 나는 아주 작은 존재였던게 그제야 보였던거다.

 

오사카가 이 정도인데, 도쿄는? 서울은? 뉴욕은?

세상을 넓게 생각하다보니 어디선가 힘이 났던것 같다.

 

 

이제 다시 저 흐름속에 뛰어들어야 할 때.

 

창가 한켠에 앉아 오빠는 돌아가서 할 일과 몇가지 팁을 알려주었다.

나보다 준비성이 훨씬 뛰어난 사람....

 

 

제법 늦은 시각에 도착해서 모리미술관은 보지 못했지만

MARVEL 전시가 꽤 크게 열리고 있어서 볼거리가 풍부했다.

난 MARVEL을 잘 몰라서 오빠뒤만 졸졸...

 

 

체력이 점점 방전되었다.

발바닥엔 불이나고 몸이 점점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러다가도 저 멀리 도쿄타워가 보이면 멈춰서서 순간을 남겼다.

 

 

신주쿠로 되돌아오니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그렇다고 그냥 자면 내일 움직이지도 못할것 같아 역 근처에 있던 드럭스토어에서 메구리즘과 휴족시간 구입;;

 

겨우겨우 호텔로 컴백해서 뜨거운 물에 피로를 풀고

다리를 휴족시간으로 도배했다.

 

 

미래에 대해 얘기하기.

한국에 돌아가서 면접보는 것에 대해 얘기한거도 포함이 될까.

진지한 얘기들을 하고 싶었지만 말 할 기운도 없었다.

내일은 오늘보다 익숙할테니 좀 낫겠지?

그래도 길가다 카페에 들어가 커피한 잔은 할 수 있겠지?

 

 

그러다 잠이 들었다.

zzzzZZZZZZZZZZZ

 

 

 

 

 

새벽 2시부터 밤 12시까지.

걸음수는 그날 하루만 22,463보 였다.

 

사실 이 숫자는 시작에 불과했다.

 

 

 

'■ Viaggio > 2017 일본도쿄'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70504 :: 셋째날 :: 14,551보  (0) 2017.05.31
20170503 :: 둘째날 :: 25,239보  (0) 2017.05.14
20170502 :: 첫째날 :: 0보  (0) 2017.05.11
프롤로그  (0) 2017.05.10
그러니까....  (4) 2017.0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