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전 오늘의 나와, 지금의 나는 얼마나 달라져있을까.
10년전 오늘의 나는 고3이었고, 열아홉 일생일대의 큰 일을 치루는 날이었고, 그 날은 내 생애 최악의 날이었다.
수포자였던 나는, 입고있던 교복을 신경쓰지도 않고
2교시에 5분만에 마킹을 마치고 엎드려자려고 했지만 이내 복통이 시작되었다.
도저히 견딜수가 없어 금속탐지기를 거치고 중앙본부에 들려 승인을 받은 다음에 양호실에 누워있었다.
점심시간에는 같은반 친구들과 모여 엄마가 싸준 점심도시락을 먹으려고 했지만 복통은 멈추지 않았고
3교시 시간에 맞춰 올라가 영어시험에 임했지만 듣기평가는 하나 걸러 한문제만 귀에 들어왔다.
빈 속에 초콜렛과 귤을 밀어넣으며 허기를 면하면서 사탐시간을 보내는데,
정말이지 120분의 사탐시간은 견디기 너무나 힘들어
중간에 포기하고 내년에 시험을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백번은 들었다.
반 친구들과 같은 학교에서 시험을 보기위해 선택했던 제2외국어. 그 시간엔 정말 의자를 박차고 나오고 싶었다.
12년동안 성실함을 무기로 공부해왔던 시간은 그날 오전 10시부터 시작했던 복통 때문에 와르르 무너져버렸다.
시험장에서 제일 먼저 빠져나와 버스에 올랐다.
원래 미술학원으로 향했어야 했지만 도저히 갈 수가 없었다.
원장님께 전화를 걸어 아무말도 못하고 울기만했다.
버스정류장으로 데릴러 나왔던 아빠를 보고 길거리에서 대성통곡을 했다.
집에오니 엄마가 저녁상을 거하게 차려놨는데 난 먹지도 않고 그 정신에 채점을 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 후의 기분은 더 최악이었다.
(10년전의 일인데 정말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다음날부터 실기에만 올인했다.
결국 나는 실기 100으로 대학에 진학했다.
나의 20대.
그 대학을 휴학없이 졸업하고
졸업하자마자 취업해서 4년 4개월을 일했고
대학원에 진학하기 위해 퇴사하여
혼자서 유럽여행을 다녀왔고
4개월남짓 쉬는 기간을 갖은 후
대학원에 와서는 한 학기를 1년의 밀도로 보냈다.
그리고 지금, 그 대학원의 마지막 학기를 보내고 있다.
난 10년동안 얼마나 컸을까.
논문 쓰기가 너무나 힘이 들어 생각만하면 울컥울컥 하는 나를 보며 강한 줄만 알았던 내가 유리멘탈이었음을 깨닫는 시간이었고, 끝이없는 일들을 마주하며 눈앞이 캄캄함을 실감했던 시간이었다.
예심이 끝나고 본심을 3주 앞두고 있는 지금도 마인드컨트롤이 잘 되지 않아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 하루하루이다.
난 강한줄 알았지만 너무나 약했다.
눈물이 나는걸 참다가 누군가에게 고민을 털어놓자마자 눈물이 쏟아져나오기도 했다.
시작부터 삐그덕거렸던 순간을 벗어나기까지 시간이 오래걸렸다.
발만 동동구르다가 마감 몇일전이 되어서야 미친듯이 하기 시작했다.
난 강한줄 알았지만 너무나 약했다.
하지만 그때와 다른건
세상 어떤 일이든 하지 못할일은 없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 일이 언제든 끝이 있을거라는 것을 안다.
단지, 어떻게 끝내느냐의 문제라는 것을 안다.
이 모든 힘듦이 나의 욕심에서 비롯된 것일지라도, 그 욕심을 즐길 수 있는 여유로움이 필요한 시기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 일이 끝나면 조금 더 크고 강한 내가 되어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난 계단 하나를 더 딛고 오를 수 있을 것이다.
그 다음의 어려움은 그때 또 넘을 수 있는 힘이 있을 것이다.
나는 10년전보다 확실히 컸지만 이 순간에 또 넘어야 할 산을 마주하고 있다.